싱가포르는 면적 약 728.6km²의 작은 도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금융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자원이 부족하고 국내 시장이 작은 이 도시국가가 어떻게 글로벌 금융 허브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는 리콴유(Lee Kuan Yew) 전 총리의 선견지명 있는 리더십과 체계적인 국가 개발 전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금융 강국 도약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철저한 계획과 실행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리콴유와 초기 싱가포르의 위기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갑작스러운 분리 독립을 맞이한 싱가포르는 심각한 생존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국가의 초대 총리인 리콴유는 이 작은 도시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싱가포르의 지리적 이점—동아시아와 남아시아, 중동을 연결하는 전략적 위치—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국가 발전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리콴유가 집권한 인민행동당(PAP) 정부는 1968년 '경제개발청(EDB)'을 설립하고, 초기에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리콴유는 단순한 제조업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 장기적 관점에서 금융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인식했습니다.
금융 허브로의 첫 걸음: 아시아달러시장 구축
싱가포르의 금융 중심지로서의 발전은 1968년 '아시아달러시장(Asian Dollar Market)'의 설립과 함께 본격화되었습니다. 당시 금융부 장관이었던 곡청통(Goh Keng Swee)의 주도로, 싱가포르 정부는 역외 금융 거래(offshore banking)를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런던의 유로달러시장을 모델로 한 것으로, 외국 은행들이 싱가포르에서 달러화 예금을 받고 대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정책은 두 가지 주요 혜택을 제공했습니다: 첫째, 역외 금융 거래에 대한 세금 혜택과 규제 완화를 통해 외국 금융기관들의 진입을 촉진했고, 둘째, 금융 거래에 대한 비밀 보장을 통해 글로벌 자본의 유입을 유도했습니다. 이로써 싱가포르는 아시아 지역의 주요 외환 거래 중심지로 급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체계적인 금융 제도 구축
1970년대에 들어 리콴유 정부는 금융 산업 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체계화했습니다. 1971년에는 '통화청'을 설립하여 금융 시스템을 감독하고 통화 정책을 수립하는 중앙은행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MAS는 금융 부문의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혁신을 장려하는 '관리된 자유화' 접근법을 채택했습니다.
또한 정부는 1973년 싱가포르 증권거래소를 설립하고, 1978년에는 싱가포르 국제통화거래소를 출범시켜 파생상품 거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싱가포르가 단순한 은행 서비스를 넘어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했습니다.
전략적인 인재 유치와 교육 투자
리콴유는 금융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우수한 인적 자원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인재가 곧 국가의 자산"이라는 철학 아래, 1970년대부터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와 난양공과대학교를 중심으로 금융, 경제, 수학, 법학 등 관련 분야의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했습니다.
더불어 '해외인재유치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금융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습니다. 외국인 전문가들에게는 세금 혜택, 영주권 취득 용이성, 자녀 교육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싱가포르에 금융 분야의 글로벌 인재 풀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법적 안정성과 부패 없는 환경 조성
싱가포르의 금융 중심지로서의 신뢰성은 법적 안정성과 부패 없는 환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리콴유는 취임 초기부터 '부패방지조사국(CPIB)'을 강화하고, 공직자들의 높은 봉급을 보장함으로써 공공 부문의 청렴성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영국 법체계를 기반으로 한 투명하고 일관된 법적 프레임워크는 국제 투자자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을 위한 법적 보호 장치를 강화하고, 국제 중재 센터를 설립하여 분쟁 해결 메커니즘을 제공함으로써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안심하고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아시아 금융위기와 전환점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싱가포르에게 도전이자 기회였습니다. 당시 집권 중이었던 고촉통 총리와 재무장관이었던 리셴룽(, 현 총리이자 리콴유의 아들)은 금융위기를 싱가포르 금융 시스템의 개혁과 강화의 기회로 활용했습니다.
정부는 금융 감독 체계를 강화하고, 리스크 관리 기준을 높이는 한편, 은행 부문의 통합과 현대화를 추진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금융 부문 발전 계획'을 수립하여 자산관리, 보험, 채권 시장 등 금융 서비스의 다각화를 추진했습니다.
지속적인 혁신과 미래 대비
2000년대 이후 싱가포르는 리셴룽 총리의 지도 아래 금융기술 혁신에 적극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MAS는 '스마트 금융 센터'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핀테크 기업들을 위한 '샌드박스' 규제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또한 블록체인,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신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금융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했습니다.
2018년에는 '산업 전환 지도를 통해 금융 산업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2022년까지 3,000개의 순금융 일자리 창출과 금융 산업의 연평균 4.3% 성장을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 정책은 싱가포르가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 환경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싱가포르 금융 성공의 핵심 요소
싱가포르가 세계 3대 금융 강국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리콴유로 시작되어 후대 지도자들에게 이어진 일관된 비전과 실행력이 있었습니다.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전략적 포지셔닝, 체계적인 제도 구축, 인재 육성, 법적 안정성 확보, 그리고 지속적인 혁신 추구는 싱가포르 금융 산업 성공의 핵심 요소였습니다.
작은 도시국가가 세계적 금융 허브로 성장한 싱가포르의 사례는 명확한 비전과 일관된 정책 실행, 그리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유연성이 국가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교훈을 제공합니다. 리콴유가 심은 씨앗은 오늘날 글로벌 금융 중심지라는 거대한 나무로 성장했으며, 싱가포르는 계속해서 금융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