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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자들의 정책 비교: 정치적, 경제적, 국제 관계(중국 증시)

by reamct 2025. 3. 22.

중공기 앞에 차트가 그려져 있는 사진

 

중국 현대 정치에서 마오쩌둥과 시진핑은 가장 중요한 지도자로 꼽힙니다. 마오쩌둥은 공산주의 혁명을 주도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확립했으며, 시진핑은 이를 바탕으로 중국을 글로벌 강대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두 지도자는 정치적 선동과 이념, 경제정책, 국제관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만, 동시에 강한 국가 통제와 이념적 통합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을 가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마오쩌둥과 시진핑의 정치적 선동 방식, 경제 정책, 국제 관계 접근법을 비교하며, 각 정책이 중국과 세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겠습니다.

중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선동과 이념 측면

마오쩌둥의 대중동원과 혁명적 선동

마오쩌둥은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후에도 지속적인 계급투쟁을 강조하며 대중 동원을 핵심 전략으로 삼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문화대혁명(1966~1976)입니다. 문화대혁명은 ‘반혁명 세력’과 ‘부르주아 요소’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었으며, 홍위병이라는 젊은 층을 동원하여 기존 사회 질서를 뒤흔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 공산당 간부, 심지어 마오쩌둥의 동료들까지 숙청당했고, 중국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또한, 마오는 개인숭배를 극대화하여 자신의 사상을 절대적 진리로 만들었습니다. '마오쩌둥 사상'은 공산당 이념의 중심이 되었으며, 그의 어록을 수록한 "마오쩌둥 어록(빨간 책)"은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교재가 되었습니다. 공산당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그의 사상을 외워야 했으며, 그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시진핑의 현대적 선전과 통제 강화

반면, 시진핑은 보다 현대적인 방식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이념적 통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2012년 집권 이후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우며 민족주의적 요소를 강조하고, 중국의 부흥과 강대국화를 핵심 목표로 삼았습니다. 또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선전과 통제 전략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공산당은 웨이보, 위챗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대중을 선전하고 있으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한 감시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 시행된 사회 신용 시스템은 국민들의 행동을 평가하여 점수를 매기고,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냅니다.

시진핑은 또한 개인숭배 요소를 강화하면서도 제도적 통제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 임기 제한을 폐지하여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고, 2017년 공산당 대회에서는 ‘시진핑 사상’을 당 헌법에 포함하여 자신의 이념을 공고히 했습니다. 이는 마오쩌둥 이후 처음으로 지도자의 이름을 딴 사상이 공식 이념으로 채택된 사례입니다.

경제 정책 비교

마오쩌둥의 중앙계획경제와 실패한 실험들

마오쩌둥은 중앙계획경제를 강조하며, 시장보다는 국가가 경제를 통제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대표적인 경제 정책이 대약진운동(1958~1962)입니다. 대약진운동은 농업과 공업을 동시에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이었으나, 과도한 목표 설정과 잘못된 생산 방식으로 인해 대기근(1959~1961)을 초래했습니다. 이 시기 약 3,000만 명이 아사하는 참사가 발생했고,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인민공사 제도에서 농민들의 생산 의욕이 저하되고, 중공업 우선 정책으로 소비재 부족과 생활수준은 하락하였습니다. 그 결과 중국의 1인당 GDP는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마오는 자급자족 경제를 강조하며 국제 경제와의 교류를 최소화했습니다.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된 후 독자적인 공업 발전을 추진했으나, 기술력 부족과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시진핑의 시장 개방과 국가 통제 강화

시진핑은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개념을 유지하며, 시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허용하면서도 핵심 산업은 국가가 직접 관리합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일대일로 이니셔티브’가 있습니다. 이는 중국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입니다. 또한,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첨단 기술 산업을 육성하고 반도체, AI, 전기차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내수 확대를 위한 ‘쌍순환’ 전략도 추진 중이며, 이는 국내 소비를 늘려 외부 경제 충격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것입니다. 또한, 빈곤 퇴치와 공동부유 정책을 통해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제관계 접근법

마오쩌둥의 반제국주의와 고립주의

마오는 외교적으로 반미·반제국주의 노선을 견지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6·25 전쟁)에 개입하여 미국과 직접 대결하였고, 1960년대에는 소련과의 이념 갈등으로 인해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는 제3세계 혁명을 지원하며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 운동을 후원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알바니아, 베트남, 캄보디아의 공산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마오주의를 확산시키려 했습니다.

 

시진핑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

시진핑은 마오쩌둥과 달리 적극적인 글로벌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의 경쟁 속에서 ‘신형대국관계’를 강조하며,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원한 외교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0년에는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을 주도하여 아시아 경제 블록을 강화했습니다.

공동부유

시진핑의 공동부유는 중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전략입니다. 여기에 세가지 핵심 요소는 1.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더 많은 부를 준다, 2.부의 편중을 방지한다, 3.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한다 입니다. 공동부유 정책은 저장성 등 시범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이를 통해 중산층 중심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현대화를 위한 장기적 국가 비전의 일부로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의 균형을 추구합니다.

이런 공동부유 정책으로 인해 중국의 부자들은 부를 국가에 기부해야하는 상황에 이르자 비트코인, 금, 현물 등 정부에서 추적할 수 없는 루트로 부를 해외로 유출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부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이로 인해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어떻게 5%대의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요? 중국 양회 이전 시진핑은 민영 기업의 국영화를 중시했던 사람이나 중국 양회 이후 주요 중국 기업들(텐센트, 알리바바, 비야디 등)의 CEO와의 면담에서 민영 기업이 부를 창출하고 이를 나누자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또한 재정적자를 키워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도 확고했습니다.

중국은 경제가 어려우면 민간 기업에 대한 압박을 줄이고 경제가 좋아지면 민간 기업에 대한 제한을 풀게 됩니다. 현재는 민간 기업에 대한 제한을 줄이고 재정적자를 키워서라도 경기 침체를 타파해 나가려는 시기로 최근 중국 증시에 훈풍이 불고 있습니다.

 

마오쩌둥과 시진핑은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중국을 이끌었지만, 강력한 통치와 이념적 통합을 중시하는 공통점을 보였습니다. 마오는 급진적 혁명과 폐쇄적 경제정책을 펼쳤고, 시진핑은 경제 개방과 기술 발전을 통해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세계 정세와 내부 변화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